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심리학
1890년대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주창하여 독자적인 심리학 영역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 행동의 기반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로 보았습니다. 이 중 리비도는 초기 프로이트, 타나토스는 2차 대전을 경험한 이후의 프로이트가 제창한 개념입니다. 정신분석이 심리학에 이바지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의식'의 발견, 그리고 심적 결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 이후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정신분석 가듯이 배출되었으며, 그들 중 유명한 학자로는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융,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아들러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곧 과학적 엄밀성의 결여, 경험적 증거의 부족, 이론 체계의 반증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과학철학자 포퍼에 의해 유사 과학의 세 가지 사례들 중 하나로 지적받게 되면서 그 지위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카를 포퍼가 주장한 반증 가능성과 경험적 증거가 과학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주장이 속속히 반박당하고 오류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이러한 지적은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이론 자체가 적용되지 않은 부분들과 문제점, 그리고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 등으로 영향력이 축소되어서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지 않으며, 그들은 미국 심리학회 단체 중 가장 큰 단체인 APA의 10% 미만,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단체인 APS의 5% 미만을 차지합니다. 특히 실험 심리학자들(기초 심리학자들) 중 정신분석학을 지지하는 학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에 와서 정신분석학은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정신분석은 문학비평 등 심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주목받는 추세라 할 수 있습니다.
구성주의 심리학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존 철학의 한 분야로 취급되던 심리학은 점차 철학에서 분화되어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1879년,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빌헬름 분트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첫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물리 실험실을 개설하면서부터입니다. 분트는 자신을 '심리학자'라고 했으며, 심리학이 독립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심리학을 직접 경험 학문이라 정의했으며, 연구 방법론으로는 '내성법'을 주장하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심리학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와 실험이 이어졌는데, 독일의 에빙하우스가 베를린 대학에서 기억과 망각에 대한 선구적인 실험을 수행하여 1885년 망각곡선 가설과 간격 효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1890년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당시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라는 책을 저술, 출간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파블로프는 유명한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을 통하여 학습 과정을 연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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